어제 출근을 하였는데,
이사님이 내게 묻는다.
"ㅇㅇ대리야, 너는 눈치가 빠르니, 요새 나랑 ㅁㅁ과장이 밖에서 뭐하고 다니는지 알지?"
- (아는 듯한 눈치로) 아뇨, 저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래. 누가 물어도 꼭 그렇게 대답해. 그게 정답이야."
사실 저 물음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퇴근길 버스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는데,
불현듯 많은 기억의 조각들이 뜻하지 않게
메모리 조각모음을 시작했다.
1) 회사 사옥 매매에 대해 물어보는 전화
나는 회사에서 총무일을 본다. 때문에 회사로 걸려오는 많은 전화들이 '6번 기타문의 사항' 다이얼을 타고 내 자리로 연결된다.
"ㅌㅌ공인중개사 사무실인데요, 서울시 ㅇㅇ구 ㅇㅇ동 매물로 나온 건물 있어서 전화드렸어요."
- 아 넵. 연락처 남겨주시면 책임자분 전달해 드릴게요.
알지 못하는 내용이었지만, 또 윗선에서 무슨 일을 하려나보다 하며 메모적어 전달해드렸다.
2) 올해 하반기로 잡혀있던 ㅇㅇ구입건
우리 회사에선 영업용으로 ㅇㅇ를 구입한다. ㅇㅇ회사기도 하고 ㅇㅇ가 다니면서 운행하는 것이 회사의 주 수입원이다. 하나 당 가격은 한화로 약 2억원 정도. 적은 돈이 아니기에 구입에 있어 년간 구입 일정이 다 정해져있다.
그런데 올해의 구매 일정은 하반기에나 예정되어 있었는데, 지난달 갑작스레 3월 중 매입을 해야한다고 지시가 내려왔다. 정말 갑작스레.
3) 이사님의 잦은 외근. 회사를 방문한 수상한 이들.
사실상 우리 회사에서 관리직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사님이 갑작스럽게 외근이 잦아졌다.
실무자도 아닌 책임자가 자리를 계속 비운다? 뭔가 이상하다.
엊그제는 벤츠 고급밴을 타고 열댓명의 사람들이 회사를 방문했다.
이사님은 관청에서 감사나온거라 둘러댔지만,
공무원들이 그런 고급 차량을 타고 올리가 없지.
4) 최근 업계동향
내가 일하는 업계의 최근 2~3년간 동향이 심상치 않았다.
'ㅇㅇ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동종업계 회사들을 하나 둘 사서 모으더니
결국엔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하는 ㅁㅁ도 인수합병이 되었다.
5) 오너의 후계자 부재
원래 내가 이 회사에 왔을 땐, 오너의 딸 두명이 재직하고 있었다.
이사의 직함을 가지고서. 그런데 그들이 한 5년만에 사직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요새 재계의 재벌 3~4세들도 경영에는 관심 없는게 트랜드라 하긴 하지만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걱정이 없는 배부른 소리가 아닐까.
6) 늙어가는 오너와 모친상
근래에 오너의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우리 오너는 선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은 2대 오너.
모친상은 회사와 오너를 이어주던 의무감을 끊어지게 하지 않을까?
위 많은 일들은 지난 반년간 파편적으로 각개 발생한 일이다.
지잉지잉. 달리는 버스 안에서 메모리 조각모음을 마친 나에게 드는 생각은
'아. 오너가 회사를 매각하려하나?'
내게 넌지시 눈치가 빠르다던 이사님께도,
뭔갈 아는 듯한 ㅁㅁ과장한테도 묻고싶은게 한 가득이다.
사실 평생 다닐 직장이 아니라 어떻게, 언제 이 곳을 떠나야 할까라고 늘 생각했다.
물론 모든게 다 나의 뇌피셜이지만.
월요일에 출근하면 ㅁㅁ과장한테 무언가 들은게 없냐며 여직원 ㅅㅅ주임한테
담배 한 대 피우자며 불러내 물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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